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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언제나 새로운 신호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사람들은 무언가의 끝맺음에 있어 기쁨, 후련함, 아쉬움, 후회 등 끝을 반가워하기도 슬퍼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불렸던 야구 선수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이가 있다. 그는 야구 선수 시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청소년 성장 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을 집필하며 현역 선수 최초로 작가 데뷔에 성공했다. 수많은 끝을 마주했지만, 전화위복의 마음가짐으로 그 누구보다 우직하고 씩씩하게 이겨낸 사람. 선수가 아닌 작가로서, 그리고 또 다른 삶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강인규를 만나보자.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이예랑 Location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
#현역 선수의 작가 데뷔
자기소개 부탁해요. (11월 2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야구부 17학번 강인규라고 합니다.
<더그아웃 매거진>과 첫 만남이에요.
기분이 좋습니다. <더그아웃 매거진>은 유명한 분이 많이 나오잖아요. 제가 그 대열에 낀 것만 해도 영광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야구부 생활을 끝내고 야구 행정가가 되기 위해 대학원 진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교생실습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낮아져서 학생들이 지금 등교하고 있어요. 고등학생 시절이 많이 생각나고, 제가 쓴 책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도 고등학교 생활을 모티브로 한 책이잖아요. 그래서 되게 감회가 새롭습니다.
마지막 학기에 학점이 아주 좋고 장학금도 받았다고 들었어요.
장학금은 체육위원회 관계자님, 감독님과 코치님, 교수님들이 좋게 봐주셔서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점은 어릴 때 공공연하게 무시를 많이 당했어요. “운동선수가 무슨 공부를 하냐” 하면서요. 그런 말을 들은 게 너무 서러워서 공부도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운동하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했더니 자연스럽게 학점으로 이어졌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2016년도에 청룡기 3관왕을 했잖아요. 그런데도 실력이 부족해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어요.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했고, 더는 야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께 말을 꺼냈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제 능력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 “네가 중학교 때부터 썼던 야구 일지를 블로그에 한번 써봐라”라고 하셨어요. 그때 한창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담은 글을 쓰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그럼 야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느냐 하셔서 블로그에 일지를 썼는데도 열정이 살아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못 하겠다고, 한계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럼 직접 겪었던 일로 소설을 써보라고 하셨어요. 근데 제가 글 쓰는 솜씨가 어디 있다고 소설입니까. 그래도 이제 야구 인생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써봤는데, 제가 한창 열정이 있던 순간인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쓰다 보니까 그때 느꼈던 감정과 열정이 되살아나는 거예요. 솔직히 소설을 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운동하고 글 쓴다는 게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었는데 정신적으로는 행복하더라고요.
지난 9월, 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을 집필했어요. 어떤 이야기인지 독자들께 소개해 주세요.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은 주인공인 강파치 선수의 청소년 성장 소설이고, 시련을 이겨내서 훌륭한 야구 선수로 나아가는 소설입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은 타자가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헛스윙을 하거나 스트라이크가 들어왔을 때 포수가 공을 놓치게 되면 타자가 진루하는 기회를 얻는다는 야구 전문 용어예요. 근데 100% 다 살아서 진루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뛰어야 살 수 있어요.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상황처럼 포기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고, 주인공인 강파치가 그 상황처럼 아무리 시련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 나가는 모습을 쓴 책입니다.
강인규 선수라 불러야 할지, 작가님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야구 선수는 끝났으니까 작가님으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소설의 주인공 강파치는 어떤 선수인가요?
강파치는 깨뜨릴 파, 어리석을 치. 어리석음을 깨뜨리라는 뜻이거든요. 강파치는 여러모로 모자란 점이 많은 인물이지만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어떻게 보면 저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많잖아요. 노력을 열심히 해도 자기의 능력이 부족해서 좌절하는 경우 말이에요. 그런 우리를 대변해주는 주인공을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그런 의미를 지닌 이름을 짓게 됐어요.
소설을 읽으며 투박하지만 솔직한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궁금해요.
제가 야구를 시작하는 데에 조건이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야구를 하고 싶으면 신문 사설을 베껴 쓰는 일을 일주일에 한 번은 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근데 힘들게 운동을 하고 나서 하기엔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혼나면서 베껴 썼는데 그게 지금 소설 쓸 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써 왔던 야구일지를 기반으로 소설을 집필했는데 야구 일지에는 어떤 내용을 주로 적었나요?) 야구일지에는 야구 전문 용어들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오늘 스윙이 퍼져서 나왔다. 내일은 바로 나오자’ 이런 훈련, 경기 내용도 들어가 있어요. 또, 야구는 멘탈 스포츠라고 생각해서 마인드 컨트롤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태까지 야구를 해온 순간을 100이라 치면 화났던 순간이 8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 일기장에 비속어도 쓰면서 제 감정 쓰레기통으로도 이용했던 것 같아요.
소설 주인공인 강파치와 강인규는 어떤 관계인가요?
강파치와 저와의 관계요? 앞에서 강파치가 많은 야구 선수를 대변한 인물이라고 했잖아요. 저 또한 강파치가 저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해요. 저도 야구에 대한 재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거든요.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계속 좌절해도 끊임없이 노력한 데에 있는 것 같아요. 강파치와 저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강준혁에서 강인규로
얼마 전 강준혁에서 강인규로 개명을 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야구를 잘하고 싶어서 바꿨는데요.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 선배님이나 두산 베어스 박건우 선배님도 이름을 바꿨다고 들었어요. 개명해서 야구를 잘하시는 선배님들이 많으니까 저도 야구 한번 잘해보겠다고 이름을 바꿨는데, 지금 야구 인터뷰가 아니라 책 인터뷰를 하고 있네요. (웃음)
개명 후 강인규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어요. 새 출발이라는 좋은 의미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전화위복을 강조하거든요.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뜻이에요. 제가 지명이 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른 길로 좋게 나아갈 수 있는 복이 됐다고 봅니다.
강파치는 강준혁일 때의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한 20%라고 말할 수 있어요. 20%는 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썼고 나머지는 제 주변 친구들이나 멀리서 들려오는 야구 선후배님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건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싶은, 나도 겪었고 친구도 겪었을 것 같은 일들을 따와서 쓰게 됐습니다.
유년 시절은 어땠나요?
제가 야구 선수를 하고 있을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일단 집안에서 운동하시는 분이 단 한 분도 안 계시고요. 부모님 두 분 모두 교직에 계셔서 운동과 관계가 없거든요. 이상하게도 제가 야구를 하고 있네요. 어쨌든 유년 시절에는 제가 야구를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야구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잠신중학교를 다녔어요. 야구를 하려고 신월중학교로 전학 갔지만, 잠신중학교에서는 공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마침 야구부가 있었어요. 그 시기에 잠신중에서 운동하던 분 중엔 뉴욕 양키스 박효준 선수, LG 트윈스 구본혁 선수, NC 다이노스 박준영 선수 등이 있었는데 선수들이 흙먼지 슬라이딩을 하면서 웃고 서로 다독여주고 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야구부의 일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잠신중학교 감독님을 찾아가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야구를 시작하기까지 감독님이 엄청나게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감독님께서 부모님부터 설득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부모님께서 잘 아시는 분야도 아니라 절대 반대하셨죠. 그래도 야구를 하겠다고 우겼는데, 그때 부모님이 응급실도 실려 가시고 그랬어요. 부모님은 당연히 테스트에서 떨어질 줄 알고 야구부 입단 테스트를 한번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야구는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어릴 때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를 했거든요. 이상하게 공을 쳐 내는 게 비슷한 거예요. 야구공이 날아오는데 테니스공처럼 잘 보이는 거예요. 감독님도 “너 야구에 재능 있다. 근데 우리 학교엔 이미 팀이 꾸려져 있어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신월중학교에 가야 한다”라고 하셔서 제가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기로 하고 야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늦은 출발에도 야구 명문으로 알려진 덕수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신월중학교가 원래 해체 위기에 놓인 팀이었는데 어떻게 열심히 하다 보니까 결승전을 뛰고 있는 거예요. 마침 덕수고 정윤진 감독님이 결승전 경기를 보러오셨어요. 그때가 제 야구 인생 전성기였는데, 그 시기에 잘하는 모습을 봐주셔서 뽑아 주셨던 거로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예요?
당연히 청룡기 결승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유는요?) 황금사자기 대회 때는 결승전을 뛰지 못했어요. 제가 낭심 수술을 하는 바람에 한창 타격감이 올라오려던 찰나에 타율도 떨어지고 시합도 못 뛰게 됐어요. 그래서 청룡기 때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전화위복을 생각하면서 경기를 뛰었는데 이상하게 잘 풀리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지금도 뛰어난 KT 위즈의 강백호 선수 때문이에요. 그 당시 강백호 선수의 구속이 150km/h였어요. 제가 4번 타자였는데도 타석에서 번트를 두 번이나 실패했어요. 공이 너무 빠르다 보니까 어떻게 칩니까. 공이 안 보여요. (웃음) 눈 깜짝할 새에 들어오고 큰일 났다 싶었죠.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열심히 노력했고 힘든 길을 다 이겨냈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여태까지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다’ 하는 마음으로 하얀색 물체가 지나가서 휘둘렀는데 잘 맞아서 날아간 거예요. 그게 또 결승타가 됐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순간 느끼게 됐어요.
2016년 청룡기 최우수선수상, 타점 상, 홈런상 등 개인 3관왕을 차지하고 ‘청룡기 MVP’를 수상했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어요.
되게 착잡했죠. 근데 이미 감독님, 코치님께 “상은 받았지만, 프로에 가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 사실을 또 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일은 되게 슬펐지만, 고려대학교에서의 4년을 되돌아보면 아주 행복했고 그때의 결정이 아쉽지는 않아요.
대학 입학 후, 꾸준히 고려대학교의 중심 타선에서 활약했어요. U-리그에서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제 첫 선발 경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쟁쟁한 선배님들이 많아서 못 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U-리그 첫 경기에 선발로 나가게 됐어요. 첫 경기에서 제가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고 팀이 이겼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려대학교에서 마지막 겨울이에요. 대학 생활은 어떤 의미인가요?
4년 동안 저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야구를 하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없고 오롯이 야구만 하게 되거든요. 대학에 오니 다양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색다른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어서 한 방향으로 향했던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대학 잘 왔다, 고려대학교 4년은 내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려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재미있던 순간은 고등학교 때 할 수 없었던 친구들과의 일탈? 일탈이라 하니 어감이 이상한데. (웃음) 고등학교 때는 축제가 없잖아요. 대학교 축제를 경험해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내가 축제를 즐기려고 야구를 열심히 한 거구나 싶었어요. 진짜 너무 재밌는 거예요. 3일 정도 하는데 고등학교 때 힘들었던 순간들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낫아웃 강인규
만약 야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백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성격 자체가 원래 우유부단했는데, 야구를 하면서 성격이 완전히 바뀌게 됐어요. 예를 들어, 탁자에 컵이 널브러져 있으면 그냥 뒀는데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컵 위치도 신경 쓰일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 된 것 같아요. 야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까지의 길을 걷기 위해 겪었던 스트라이크 순간, 그리고 낫아웃 순간은 언제인가요?
스트라이크 순간은 대학교 2학년 때. 1학년 때 U-리그에서 홈런 6개를 쳤어요. 이거 잘하면 대박 나겠다, (웃음) 대학 와서 대박 나겠다 싶어 욕심을 부렸어요. 과유불급이라고 몸을 더 키우고 웨이트도 하고 체중도 늘렸는데 벌크업에 실패했어요. 원래 홈런 치고 방망이 휘두르는 족족 안타가 되니까 주변 사람들 모두 이 페이스로 가다가 홈런 50개는 치겠네 하더라고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1할 9푼을 유지하다 시즌 마지막에 겨우 2할을 기록했어요. 이게 제 스트라이크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또, 낫아웃 순간은 제가 2학년 때 무엇이 부진했나 다시 생각하며 더 철저히 준비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유연성이 되게 떨어지는 거예요. 그럼 스트레칭을 조금 더 하자고 생각했죠. 제가 원래 스트레칭을 20분씩 매일 하거든요. 스트레칭 시간을 1시간 정도로 늘리니 몸의 가동 범위가 더 넓어지더라고요. 3학년 때 성적이 되게 좋았죠. 그게 제 낫아웃 순간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처럼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써 내려간 소설이에요. 단순히 책 한 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야구 선수가 아닌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될 듯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해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야구는 재능이라는 부분이 크니까요. 재능을 배제하고 열심히 하는 습관만 들인다면 다른 일을 하더라도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야구 선수들이 운동량이 되게 많아서 야구를 해 왔던 것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열심히 한다면 분명 성공할 겁니다. 야구가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대학원 면접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원에 진학해서 스포츠경영, 마케팅 분야를 전공해서 나중에 야구 협회나, 관련 분야에 종사해서 한국 야구 발전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소설 2편도 계획 중에 있나요?) 지금 구상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웃음)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질문입니다. 나에게 야구란?
저에게 야구란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야구가 없었더라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백수가 돼 있었을 거예요. 근데 저한테는 야구가 인생을 어떻게 나가야 할지 알려줬다고 생각해요. 야구가 작은 사회라고 하잖아요. 야구를 하면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 보니 제 인생을 여기까지 이끌어 준 거 같아요. 그래서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체는 또 다른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의 문장들은 강인규 그 자체였다. 꾸밈없이 투박하지만, 진심을 눌러 담아 쓴 솔직한 글이었다. 강한 에너지와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은 야구를 포함해 그 무엇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야구도 공부도 글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인터뷰 중에서도 숱하게 드러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에 어떤 태도로 임해왔는지 확실히 엿볼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생각과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끝은 실패, 좌절이 아닌 그저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한 것 아닐까. 야구는 내비게이션이라는 그의 인생 여행에 또 다른 목적지는 어디일지,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